미국 이민 생활 경험 수기

달빛 물든 쌀포대(3 마지막 편)

정성 글 2025. 2. 24. 07:47

 

미국 이민 생활 경험

 

오늘 안에 쌀 한 포대를 구하는 일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눈앞이 캄캄해져 오고 온몸에 힘이 빠지며 몸이 축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늘어진 몸이 허물어져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는 눈을 감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하나님! 막막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 네 가족은 지구 반대쪽 나라, 일가친척, 친구 하나 없이, 거대한 땅덩어리 이 나라에서, 마치 조그만 통통배에 몸을 싣고, 불빛 한 점 없는 망망대해 난민처럼 표류하고 있습니다.

이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려 구조의 손길을 여기저기 보냈지만 허사입니다.

지금 우리 가족이 식량이 없어 굶고 있습니다.

 

나는 빈손으로는 집에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한 번 도와주세요. 제발 식량 한 포대만 어디서 구할 수 없을까요?” 이렇게 한참을 중얼거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는 느낌이 들어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제정신이 아닌 이상한 사람을 봤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꾸 뒤를 쳐다보며 지나가는 백인 노부부의 굽은 등이 보였다.

벌써 주위는 어두운 땅거미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7시가 지나 있었다. 벌써 이렇게 되었나, 하고 집에 가려고 의자에서 일어서 옆에 놓았던 가방을 어깨에 멨다.

 

이제나저제나 쌀 포대를 들고 올 나만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니, 차마 집을 향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저녁내 이렇게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종일 애타게 기다릴 식구들을 생각해, 집으로 가기 위해 차가 주차된 주차장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발목에 천근만 근짜리 납덩어리라도 달린 듯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참을 운전해 집에 도착했다.

지하 현관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서니 온 집안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얘들도 밝은 얼굴로 둘이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내 눈은 자연스럽게 출입문 옆 쌀자루에 시선이 갔다.

어!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종일 쌀 포대를 생각해 헛것이 보이는가 보다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봤다.

다시 봐도 분명 쌀 포대가 두 개였다.

 

아침까지 쌀이 바닥나 헐렁하게 다 찌그러져 있던 빈 쌀자루 옆에 배가 불룩한 큼지막한 40파운드짜리 쌀 포대가 그 옆에 놓여 있었다.

나는 그때 믿기지 않는 일에 어찌나 놀라, 그 쌀 포대에 그려진 그림이 내 뇌에 강하게 각인되었던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쌀 포대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하얀 바탕에 파란색으로 그려진 둥그런 원안 벼 포기에 주렁주렁 달린 노란 벼 이삭이 탐스럽게 그려져 있는 “한국미”라는 상표를 가진 쌀 포대였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아내에게 물으니, 점심때쯤 교회에서 몇 번 뵌 적이 있는 고 집사님 부부가 집에 들렀다고 했다.

집에서 키우는 옥수수가 잘 여물어 애들 쪄 먹으라고 옥수수 몇 개를 그릇에 담아 가져오셨다고 한다.

부인 고 집사님이 엄마나 애들이나 얼굴이 창백하고 힘이 없어 보인다며, 19

아내에게 식구들 다 어디 아프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아내가 다들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고 둘러댔지만, 눈치 빠른 남편 고 집사님이 나가시면서 출입문 옆의 빈 쌀 포대를 보고 곧장 한국 마트로 차를 몰아 쌀 한 포대를 사 오셨다고 한다.

빈 쌀 포대 옆에 새 쌀 포대를 놓아주시고는 부인 집사님은 아내를 꼭 껴안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으니,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고 했단 말을 전하는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했다.

인척 관계가 전혀 없어 막막하던 우리 가족에게 관심을 주시는 고 집사님 부부의 사랑에 나도 가슴이 먹먹해 왔다.

이제 저 쌀 한 포대면 우리 네 식구는 며칠은 굶지 않고 살 수 있고, 내일부터 내가 할 밤일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다소 마음이 놓였다.

 

어제부터 몇 끼니를 못 먹어 많이 시장했던 터라, 밥 한 그릇을 된장국에 말아 뚝딱 먹어 치우고 후식으로 오랜만에 먹어보는 옥수수 한 개를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쌀이 가득 담긴 새 쌀 포대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거실 창문을 통해 비쳐온 달빛이 쌀 포대를 환히 비치고 있었다.

쌀 포대에 그려진 누런 벼 이삭에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은 포근하고 넉넉했다.

오늘 고 집사님 부부가 우리 가족에게 행한, 조건 없는 하나님 사랑처럼, 나는 그날 밤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잤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쌀 포대에 그려져 있던 노란 벼 이삭이 나의 영혼에 깊이 새겨졌던지, 나와 아내는 아들 한 명씩 손을 잡고, 네 식구가 함께 나란히 손을 잡고, 누런 벼 이삭이 황금물결처럼 출렁이는 가을 들판 길을 신나게 뛰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한없이 이어지는 들판 끝나는 곳,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지평선을 보니,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이 땅을 박차고 일어나,

지상으로 힘차게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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