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 생활 경험 수기

미국 스쿨 버스와 대학 입학의 꿈(2)

정성 글 2025. 2. 24. 10:32

미국 스쿨버스 운전 교육

 

첫날 오리엔테이션 말미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출신 나라와 직업도 다양했다.

살바도르(엘살바도로), 베트남, 남아프리카 공화국, 온두라스, 캄보디아, 베트남, 페루 과테말라, 볼리비아,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한국,

한국 사람은, 이름이 행 신( Hang Shin), 나 혼자였다.

훈련 시간은 오전 9.30에서 오후 3시까지인데, 점심시간 1시간 빼고 5시간이었다.

훈련 기간 동안 공부할 두꺼운 노란색 교과서가 지급됐다.

우리 토등학교 다닐 때, 가난한 사람은 없고 집안 형편이 좀 나은 사람 , 한 학급에서 한두 명만 있었던 전과만 한 두께와 크기인 교과서였다.

담임 교관은 미 육군 수송병 훈련 이론 프로그램을 5주로 축약해 교육한다고 했다.

 

우리 27명의 교육을 맡은 인스트렉터(instructor 강사, 교관)은 3명이었다.

책임 교관이 앞에서 수업하면 조교 둘이 훈련생들이 잘 이해했는지를 한 사람씩 다 확인하며 수업 보조를 했다. 수업 중간에 책임 교관은 왼쪽 가슴에 붙은 명찰을 보고 이름을 불러 칠판 앞으로 나오게 해 칠판에 쓰며 방금 배운 내용을 앞으로 나와 설명해 보라고 했다.

영어 발음이 안 좋아 모두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어 나는 이 시간이 제일 힘들었다. 내가 15여 년 전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영어 발음이 엉터리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첫날 교육은 CPR (cardiopulmonary resusciation 심폐 소생술)이었다.

오전 이론 교육을 받고 교육 내용을 이해했는지 퀴즈 이론 시험을 봤다.

80점이 못 되어 탈락한 사람이 다섯 명이 나왔다.

나는 가까스로 80점이 넘어 첫날 오전에 집으로 돌아가는 훈련원 퇴원 조치를 면했다.

이런 퀴즈 (쪽지) 시험을 이틀에 한 번씩 본다고 했다.

한글로 본다면 중학교 2학년 수준이면 다 풀 문제를 생소한 단어들이 많이 나오는 영어 시험이라, 시골 고졸 출신치고는 제법 영어 단어를 많이 알고 있는 나도 무척 어려웠다.

앞으로 한 달을 어떻게 탈락하지 않고 버텨낼지 걱정이었다.

 

첫날 CPR (심폐 소생술) 이론 퀴즈 시험에서 5명이 탈락하고, 다음날부터 어떤 날은 한 명, 어떤 날은 두 명, 어떤 날은 다 살아남았다.

모두 그날 탈락하지 않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강의에 집중했다.

그들도 모두 자기 나라에서는 고급 학력의 소유자들이지만, 나처럼 영어 쓰고, 듣고, 말하기, 즉 영어 이해가 문제였다.

스페인어를 쓴 남미 사람들은 영어가 같은 어족이라 그런대로 영어를 잘했다.

스쿨버스 운전 교육은 아침 9시부터 오후 3.30 분에 끝나는 강도 높은 운전 이론과 실기 수업으로 진행된다.

이틀에 한 번씩, 오전에 하는 운전 이론 수업이 끝나면 그 전날과 그날 배운 수업을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대개 10문제씩 되는 주관식 퀴즈(쪽지) 시험을 본다.

 

거기에서 한 번이라도 80점을 못 맞으면 그날 그 시간에 탈락하고 집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한 달간 쉬고 다시 한 달 전 멈춘 수업부터 시작해 또 한 번 퀴즈 시험에 80점을 못 맞으면, 그 시간부로 스쿨버스 훈련원 퇴원이 결정된다.

그 사람은 1년간 스쿨버스 운전직을 지원할 수 없다.

나는 5주간 퀴즈 시험을 12번 치렀는데 다행히 다 통과했다.

오후에는 실기 수업을 했다.

실기 수업은 운전석 반대편 맨 앞 좌석에 운전 교관이 타고 훈련생이 대형 스쿨버스를 운전하고 교관이 지정하는 도로로 간다. 그날 지정하는 도로는 훈련생 각자가 다른 것으로 보면 교관들이 그날 갈 길이 서로 겹치지 않게 미리 조정하는 것 같았다.

 

어떤 날은 주택가로 가고, 그다음 날은 지방 도로, 다음 날은 고속도로로 가는 식이었다.

교관은 실습하는 동안 옆에서 체크 서류에 운전 기능 숙련 정도를 자세히 살피고 기록했다.

운전 중 잘못하는 동작은 그 즉시 지적하며 “네 잘못되고 부주의한 운전 습관이 학생들 수십 명이 졸지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 운전할 때 정신 바싹 차리라”고 말했다.

그들은 지적된 사항은 그날 훈련 일지에 꼼꼼히 기록했다.

그날 운전 훈련이 끝나고 훈련원으로 돌아와 차를 스쿨버스 훈련원 주차장에 주차하고, 훈련생은 스쿨버스 운전대에 그대로 앉아 있으면, 교관이 오늘 훈련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개선점을 일목 요연하게 자세히 설명했다.

훈련생은 유니폼 상의 왼쪽 가슴에 달린 주머니에 훈련 기간 넣고 다니는 조그만 메모 공책을 꺼내고, 교관의 지적 사항을 빠짐없이 적고 숙지해 다음 훈련에는 똑같은 실수를 안 해야 한다.

후에 똑같은 실수를 다시 하면 여자 백인 교관은 운전 전과는 딴판으로 눈을 부릅뜨고 불호령을 했다.

 

“당신의 사소한 운전 실수로 차에 탄 학생들이 크게 다치고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이 차는 당신 혼자 타고 다니는 개인 승용차가 아니고, 초 중고 학생들이 아침 통학할 때 또는 장거리 소풍 갈 때,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스쿨버스임을 명심하고 정신 바싹 차리고 운전하라”고 호통을 쳤다. 맞는 말이었다.

스쿨버스의 바깥 철판은 탱크처럼 튼튼했다.

웬만한 승용차는 충돌하면 종잇장처럼 바스러져 저만치 튕겨 나갈 것 같았다.

그렇게 어린이들이 타는 스쿨버스 교육을 그렇게 시키는 것을 보면,

미국인들의 어린이들 보호와 안전 예방에 대한 철저함을 엿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무척 인상적인 운전 방법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는 운전하는 동안은 쉬지 않고 고개를 자동으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스쿨버스 운전자는 반드시 고개를 좌상우로 계속 움직여야 한다.

좌측 백 뷔우 밀러(back view mirror), 운전석 머리 백 밀러, 우측 백 뷔우 밀러, 순서로 반복해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동안은 계속 쉬지 않고 쳐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스쿨버스는 후진해서는 안 된다.

차를 돌릴 일이 있으면 반드시 그 주위를 배회하며 유턴할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 외에도 “이런 것도 꼭 지켜야 하나?” 하는 부분이 많았다.

 

나는 처음엔 “미국 가기 전 한국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1톤짜리 소형 트럭을 8년을 운전했는데, 운전 더 배울 것이 뭐가 더 있겠는가?”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들이 역점을 두고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운전 기술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운전 기술, 즉 디펜스 드라이빙(defence driving 방어 운전) 이었다.

나는 그런 세밀하고도 철저한 운전 안전 교육 덕분인지 미국 사는 27년 동안, 한 건의 교통 접촉 사고도 없이 단지 신호 위반 3개뿐인 모범 운전사가 되었다.

한 달 교육 끝날 때까지 쪽지 시험을 열두 번을 치렀다.

그 과정에서 22명이 탈락하고 나 포함해 5명만 남았다,

캄보디아에서 온 “썸밧 킴”이라는 이름의 키가 작고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쓴 훈련생은, 이전에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4년이나 스쿨버스 운전을 한 경력이 있는데도 훈련 도중 탈락했다.

 

그는 길을 찾는 독도법 수업이 있는 날 탈락했다.

그날 퀴즈 시험은, 길 찾아가는 문제 5문제가 출제되었는데 지도책 글씨가 깨알처럼 작았다.

그는 돋보기안경 위에다 손으로 쥐는 원형 돋보기를 대고, 이중 돋보기로 지도책을 보며 시험 문제를 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애석하게도 탈락했다.

그는 수업 도중 책가방에 필기 노트를 챙겨 넣고 들고 집으로 가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날 독도법 퀴즈 시험에 훈련생들이 우수수 추풍낙엽처럼 7명이 떨어졌다.

퀴즈 시험은 목표 지점을 정해주고 지도를 보며, 답안지에 목표 지점에 차를 운전해 갈 때까지, 만나는 길 이름을 쓰고 라잇 턴(righjt turn), 레프트 턴(left turn), 유턴(U turn), 식으로 표시하는 시험이었다.

나는 그날도 운 좋게 탈락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것도 다섯 문제가 나온 시험 문제를 제일 빨리 풀어내고 점수도 100점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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